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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을 괴물로 키울 것인가 그림 한 점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 7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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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5일 전






[문화전문기자 박정호가 만난 세상]‘경영학 교수에서 그림 전도사로…’ 황의록 한국미술재단이사장전국 초등학교 90곳에 작은 미술관 만들어…총 600곳 목표형편 어려운 화가들과 대중을 연결하는 재단 12년째 이끌어




그림이 세상을 따듯하게 만들 수 있을까? 황의록 한국미술재단이사장은 “그렇다”고 확신한다.
그림이 세상을 따듯하게 만들 수 있을까? 황의록 한국미술재단이사장은 “그렇다”고 확신한다.

2026년 ‘말의 해’가 중턱으로 달려간다. 요즘 황의록(78) 한국미술재단(KAF) 이사장의 감회는 각별하다. 만 11년 전 이맘때, 그는 포부 가득한 ‘세컨드 라이프’를 시작했다. “딱 3년만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벌써 12년째를 맞았다.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돌아봤다. 얼굴에 살짝 미소도 감돈다. 처음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황 이사장은 경영학자 출신이다.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를 지냈다. 2013년 정년 퇴임 후 그림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렇다고 화가가 된 것은 아니다. 미술 대중화라는 원대한 목표를 세웠다. 실력과 재능은 뛰어나지만 기회를 잡지 못한 우리 시대 화가들을 세상에 알리는 데 남은 시간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화가들에게 전시 공간 무료 제공

그는 보금자리도 장만했다. 서울교육대학 인근에 20평 남짓한 전시장을 마련했다. ‘갤러리 카프’다. 그때부터 쉼 없이 전시를 열어 왔다. 매년 26차례, 여기에 자매 화랑인 경기도 화성 로얄롯지갤러리 전시와 여타 지방 순회전 등을 더해 지금껏 290회 가까운 전시를 개최했다. 올 5월 28일부터 6월 10일까지 갤러리 카프에선 중견 펜화가 안충기씨의 고양이 특별전 ‘우리 모두 조금은 고양이’가 이어진다. 반려동물로 인기가 높은 고양이의 다양한 자태를 유머 넘치게 표현한 작품이 선보인다.



황 이사장은 작가들에게 갤러리를 무료로 제공한다. 작품 판매액의 일부를 갤러리 운영비로 쓰지도 하지만 해마다 사재 5000~6000만원을 따로 들일 만큼 헌신적이다. 재단 운영비는 대부분 외부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일반 전시 말고도 전국 초등학교 90곳에 작은 미술관을 세워주는 등 우리 미술계의 ‘키다리 아저씨’로 뛰고 있다. 전직 경영학 교수는 왜 이리 미술 대중화에 온갖 정성을 기울이는 것일까.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림과 미술이라는 꿈을 놓지 않겠다”고 다졌다.


한국미술재단 갤러리 카프 외경.
한국미술재단 갤러리 카프 외경.


3년 예상한 일이 훌쩍 10년을 넘겼다.



“3년 후에 망하는 것을 목표로 첫발을 내디뎠다. 돈 떨어질 때까지 아끼지 말고, 후회 없이 해보자고 했다. 그런데 후원자가 늘어났고, 주변에 도와주는 분이 점점 더 생겼다. 덕분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제가 크리스천이다.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한다. 한데 사회적으로 정말 갈급한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주변에서 동조를 해주었기에 가능했다. 처음엔 화가협동조합 형태로 출발했다가 2021년 비영리 재단으로 기틀을 갖췄다.”



왜 그림인가? 계기가 궁금하다.



“원래 사진을 좋아했다. 젊어서 사진작가를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기량이 늘지 않았다. 주변에서 좋은 그림을 많이 보라고 권했다. 이곳저곳 전시회를 부지런히 찾아다녔다. 화가, 작가들과도 자주 어울렸다. 그러면서 예술가들의 궁핍한 현실에 눈을 떴다. 그림으로 생계를 해결하는 화가는 극히 일부다. 좋은 작품을 완성해도 대중에게 알릴 방법이 제한적이다. 퇴직 후에 그들을 돕는 일에 전념하기로 했다.”



쉬운 작업이 아니었을 텐데….



“처음엔 모두 미친 짓이라고 말렸다. 하지만 가능성을 봤다. 기업 마케팅을 전공하고, 국내 여러 대기업을 자문했던 노하우를 살려 작가와 후원자가 만나는 통로를 개척했다. 그간 인연을 맺어온 기업인과 회사들의 지원을 요청했다. 일일이 발로 뛰었다. 이런 모델은 외국에서도 선례를 찾아볼 수 없다. 새로운 길을 닦은 셈이다.”



갤러리 카프에서 5월 28일부터 2주간 고양이 특별전을 여는 중견 펜화가 안충기씨의 신작들. 거대한 비술나무 아래에서 바둑을 두는 사람들과 이를 구경하는 고양이가 여유롭다. 옥수수를 뜯어먹거나 펭귄과 포옹하는 고양이가 앙증맞고 정겹다.
갤러리 카프에서 5월 28일부터 2주간 고양이 특별전을 여는 중견 펜화가 안충기씨의 신작들. 거대한 비술나무 아래에서 바둑을 두는 사람들과 이를 구경하는 고양이가 여유롭다. 옥수수를 뜯어먹거나 펭귄과 포옹하는 고양이가 앙증맞고 정겹다.


기성 화단이 곱지 않게 봤을 것 같다.



“무슨 꿍꿍이냐, 속셈이 무엇이냐 등등, 의구심이 많았다. 교수라는 사람이 뭐가 아쉬워서 이런 일을 벌였느냐는 것이다. 재단은 소속작가 중심으로 운영되는데, 처음에는 들어오려는 사람이 적었다. 시간이 흐르며 그런 오해는 사라진 것 같다. 사실 갤러리가 잘 되려면 컬렉터가 많이 와야 하는데 우리의 경우는 작가와 갤러리 관계자가 더 자주 찾아온다. 그만큼 믿음이 쌓인 셈이다.”



작가 선발이 엄격한 것으로 아는데….



“현재 소속작가가 30명 정도다. 1차 작품 포트폴리오, 2차 작가 작업실 현장심사, 3차 초대전을 통한 공개심사. 4차 동료 작가들의 인간성 평가다. 4차 작업은 2년에 걸쳐 진행된다. 한번 선발한 작가는 계속 후원한다. 재단은 작가를 지원하되 절대 간섭하지 않는다.”



올해도 6월 한 달 공모 접수를 한다.



“국내에서 작업하는 한국인 작가면 된다. 순수 회화 대상이다. 전문가들의 종합평가를 거쳐 2028년 말 최종 합격자를 발표한다. 심사가 까다로운 편이라 최근 3년간 새로운 회원을 뽑지 못했다. 문턱을 조금 낮출까도 고려 중이다.”



작가들 해외여행도 주선하고 있다.



“작가들도 새로운 자극을 받아야 새로운 작품을 낳을 수 있다. 모든 여행경비를 지원한다. 2018년 이탈리아, 지중해를 시작으로 지난해 남미 일대까지 매해 3주가량 한국에선 보기 어려운 빛과 색을 찾아 떠났다. 올 6월 16~29일에는 그리스, 튀르키예로 간다. 단지 풍물 구경을 가는 게 아니다. 작가들은 한국에 돌아와서 신작을 발표하고, 순회 전시회도 연다. 올해에도 지난 4월 갤러리 카프를 시작으로 청주 예봄갤러리(4.17~5.13), 충주 중원예뜨락갤러리(5.18~6.17), 화성상공회의소(6.20~9.19)에서 ‘남미 여행작품전’이 열리고 있다. 이를테면 찾아가는 전시다. 희망하는 기업·학교·단체가 있으면 작품 운송 설치비만 부담하면 된다.”



2025년 남미를 다녀온 한국미술재단 소속작가들이 올해 신작 순회전을 열고 있다. 왼쪽부터 신동권 작가의 ‘일출, 볼리비아 고원 사막’, 박재웅 작가의 ‘아르헨티나 일몰’, 변해정 작가의 ‘여정’.
2025년 남미를 다녀온 한국미술재단 소속작가들이 올해 신작 순회전을 열고 있다. 왼쪽부터 신동권 작가의 ‘일출, 볼리비아 고원 사막’, 박재웅 작가의 ‘아르헨티나 일몰’, 변해정 작가의 ‘여정’.

학교당 1억원, 100억원가량 투자



황 이사장의 꿈은 미술계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의 또 다른 관심은, 아니 더욱 중요한 시선은 어린이들에게로 향한다. 이름하여 초등학교 작은 미술관 프로젝트다. 매년 전국의 15~20개 초등학교 안에 미술관을 만들어 주고, 소속화가들의 작품을 영구 기증해 우리네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예술과 가까이 지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예술의 존재 목적이 새로움을 향한 감수성과 상상력 확장, 그리고 이웃에 대한 사랑과 공감의 증폭이라면 초등학교 미술관은 어찌 보면 미래의 한국, 나아가 세계를 풍요롭게 만드는 디딤돌쯤 된다. 성적과 입시, 경쟁과 성공이란 근시안에 갇힌 우리 새싹들의 마음과 정신을 키워주는 종합 영양제 같은 프로그램이다. 소속화가 지원 프로젝트가 현재형 시점이라면, 초등학교 미술관 설립은 미래형 시점이다.



황 이사장이 어린이 감성 개발에 눈을 뜬 것은 2010년 무렵이다. 당시 아주대 경영대 교수였던 그는 방학마다 학생들과 함께 외국 문화·기업현장을 도는 인재 육성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그때 강원도 태백에서 올라온 여학생에게 큰 충격을 받았다. “네 꿈이 무엇이냐”는 그의 질문에 그 학생은 “탄광 광부와 시장 할머니밖에 본 적이 없는데 무슨 꿈을 키울 수 있겠어요”라고 대답했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찾았다. 당장 표시는 나지 않겠지만 아이들의 상상력을 키워주고 싶었다. 예술만큼 좋은 교실이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금껏 90개 초등학교에 미술관을 세웠다.



“2020~2021년 강원도에 30개, 2022~2023년 경북에 30개, 2024~2025년 전북에 30개를 조성했다. 2026~2027년엔 전남 지역 30곳을 계획하고 있다. 올해 말이면 100곳이 넘을 것 같다. 전국 17개 교육청 산하에 초등학교가 6000곳 정도 있는데, 그중 600개 초등학교에 미술관을 지으려고 한다. 아직 갈 길이 멀다. ”



설립 못지않게 운영이 중요한데….



“그림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따듯하게 만들고 싶다. 교육부가 2년마다 시·도교육청을 추천해 주고, 해당 교육청이 초등학교 30곳을 선정하면 우리 재단 작가들의 작품을 기증한다. 작가들은 아이들 미술수업을 맡아주고, 어린이들과 공동 전시도 연다. 교육청마다 사정이 조금씩 다르지만, 해당 교육청 학교별로 6개월~2년 단위로 전시 작품을 교환한다. 우리의 인력과 예산으론 다할 수 없기에 사후 관리는 교육청이 책임진다.”



그래도 비용이 만만찮겠다.



“재단 후원자들, 작가들의 기여 덕분이다. 그림값을 실비로 따지면 한 학교당 1억원 정도 들어간다. 이래저래 누적 액수가 100억원은 된다. 어린이들의 예술교육에 관심 있는 일반인들의 지속적인 후원을 기대한다.”



한국미술재단은 지난해까지 전국 90개 초등학교에 작은 미술관을 세웠다. 왼쪽 위와 아래는 전북 진안 장승초등학교와 전북 익산 동남초등학교 미술관. 오른쪽은 재단 소속작가들이 군산 푸른솔초등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는 모습.
한국미술재단은 지난해까지 전국 90개 초등학교에 작은 미술관을 세웠다. 왼쪽 위와 아래는 전북 진안 장승초등학교와 전북 익산 동남초등학교 미술관. 오른쪽은 재단 소속작가들이 군산 푸른솔초등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는 모습.

언제까지 붕어빵만 키울 건가


보기 드문 장기 프로젝트다.



“그렇다. 먼 훗날 초등학교 미술관 설립 계획이 완료되면 중·고교로 프로그램을 넓혀가고 싶다. 제가 아니더라도 그 다른 누가 일을 이어받을 것이다. 이미 차기 이사장을 선임한 상태다. 지금 같은 교육이 계속된다면 우리의 앞날이 절대 밝지 않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



왜 그렇게 생각하나?



“오직 자기만 아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사람은 이성과 감성이 조화를 이뤄야 하는데, 입시 위주의 현행 교실은 숱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남을 배려하지 않는 괴물을 양산할 수 있다. 실제로 지금도 얼마나 많은 아이가 정신적으로 힘들어하고 있나? 머리만 과열되고 가슴은 식어가고 있다.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까 자신마저 해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어릴 때부터 감성 교육이 중요하다. 인간의 노동을 인공지능이 상당 부분 대체하는 AI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언제까지 우리 아이들은 지금처럼 방치할 것인가?”



미술교육이 대안이 될 수 있나?



“미술을 포함한 예체능을 도외시하는 작금의 풍토가 위험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그림 한 점이, 노래 한 곳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붕어빵 아이들만 찍어내는 교육으로는 절대 앞날을 보장할 수 없다. 미술관이 들어선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을 만나면 이런 말씀을 종종 하신다. ‘아이들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치고받고 싸우는 게 줄어들었다. 정서적으로 안정되는 것 같다. 복도에 높인 그림 앞에 서면 아이들이 꽃밭을 걷듯 조용히 걸어간다’라고…. 조금씩 달라지는 교실의 변화에 희망을 건다.”



꿈이 꿈을 낳는 것일까. 요즘 황 이사장은 제3의 프로젝트도 준비하고 있다. 이른바 ‘국민 수장고’ 사업이다. 넘쳐나는 그림 때문에 고민하는 화가들의 작품을 무료로 보관해 주고, 일반인들은 해당 작품을 커피 몇 잔 값으로 빌려 즐길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을 꿈꾸고 있다. 작가와 대중을 직접 연결해 양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윈윈’ 프로그램이다. 물론 엄청난 난제가 있다. 작품을 보관할 넉넉한 공간과 작품을 관리할 항온·항습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일개 재단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는 사항이다. 사회와 국가와 함께 손잡고 풀어가야 한다.



국민 수장고, 아이디어가 좋다.



“작품은 쌓이는데, 이를 둘 곳이 없어 힘들어하는 작가가 한둘이 아니다. 신진 작가든, 중견 작가든 공통으로 겪는 고통이다. 그들의 작품을 받아서 보관하고, 이를 부담 없는 가격에 일반에 빌려주면 모두에게 좋지 않을까? 가정이든, 사무실이든 훨씬 아름다워질 것이다. 국민 전반의 문화 수준이 올라갈 게 분명하다.”



왜 이런 구상을 했나?



“재단을 만들고, 작가들을 돕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정성을 다한, 그러나 팔리지 않은 작품을 쌓아둘 곳이 없어 그림을 포기하는 화가들이 많다. 절대 몇몇 작가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소중한 문화자산이 사장되는 꼴이다. 국가적으로도 낭비 아닌가? 그렇다고 대중들이 고가의 그림을 살 수는 없다. 작가와 관객을 잇는 다리가 필요하다.”



2025년 10월 한국미술재단 10주년을 기념하고 있는 황의록(가운데) 이사장.
2025년 10월 한국미술재단 10주년을 기념하고 있는 황의록(가운데) 이사장.

앞으로도 남은 꿈 ‘국민 수장고’


핵심은 실현 가능성이다.



“물론 한두 푼으로 해결할 수 없다. 국가나 지자체의 유휴 건물이나 부동산을 이용하면 실마리를 풀 수 있지 않을까? 그림은 디지털 형태로는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 실물이 중요하다. 문제는 결단이다. 미술은 감상 대상을 넘어 국격을 높이는 미래산업이다. 인간의 불안을 잠재우고 상상력을 펼치는 데 그림만 한 게 없다. 예술에도 투자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 돈이 부족한 건 아니다. 이대로 가면 우리 모두 ‘돈 많은 가난뱅이’가 될 수 있다. ”



경영학자다운 발상이다.



“경영학과 미술, 얼핏 다른 세계처럼 보이지만 둘 다 모두 사람의 일이다. 기업의 경쟁력도 결국 상상력에서 온다. 아무리 훌륭한 빼어난 기술도 누군가 바로 흉내 내고 따라온다. 격차를 유지하려면 새로운 발상과 전략이 필수적이다. 예술은 사람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것 중 하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산소와 같다. 당장 밥 먹여 주지는 않지만 예술을 잃으면 호흡곤란증에 걸릴 수 있다. 예술은 사회가 매끄럽게 돌아가게 하는 윤활유다. 각종 갈등과 마찰을 줄이는 촉매다. ”



황 이사장은 자신을 ‘행복한 바보’라고 했다. 재단 운영이 힘들다고 투정을 부릴 만도 하지만 늘 마음이 즐겁다고 했다. 왜? 항상 그림과 함께하고, 또 그곳에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초대해왔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브라보! 멋진 인생 2막’이다.

“어린 시절에 가정이 무너져 정말 어렵게 공부했다. 중·고 과정을 검정고시로 마쳤고, 대학 입학금을 서울 중랑천 판자촌 사람들이 모아서 주기도 했다. 국비 유학생으로 미국에서 공부하고, 교수까지 됐다. 힘겨웠지만 인생이 순조롭게 풀린 편이다. 지금은 내가 받아온 것을 사회에 돌려줄 때다. 사정이 곤란한 화가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면, 그들은 언젠가 훨훨 날아갈 것이다. 우리의 미래는 아이들이 만든다. 먹고 살기 급급했던 기성세대의 역경을 잘 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까지 그렇게 살게 할 수는 없다. 오직 자기 앞만 챙기는 괴물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중견 펜화가 안충기 “우리 모두 조금은 고양이”
중견 펜화가 안충기 “우리 모두 조금은 고양이”

갤러리 카프에서 고양이 특별전을 여는 펜화가 안충기(사진)씨도 멋진 인생 2막을 열어가는 주인공이다. 일간지 편집기자로 젊음을 살랐던 그는 어린 시절에 못다 한 그림에 대한 열정을 40대 중반부터 다시 불태우기 시작했다. 2008년 우연히 시작한 펜화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천직이 됐다. 0.1㎜ 철펜과 먹물로 세상만사를 집요하게 담아내고 있다.



안 화백의 주 종목은 ‘비행산수’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우리 산하 시리즈로 호가 났다. 한반도 곳곳의 정경이 그의 촘촘한 필선으로 되살아났다. 그간 세 번의 개인전을 열었는데, 그중 두 번이 갤러리 카프에서였다. 이번 전시로 황의록 이사장과 세 번째 연을 맺게 됐다.



“2019년 황 이사장에게서 처음 연락이 왔다. 모르던 분이었다. 내 펜화를 눈여겨봐 왔다고, 한번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가 살아온 얘기에 감동하고 열렬한 팬이 됐다. 한국의 미래는 예술과 어린이들에게 달려있다는 그의 신념에 공감했다.”



안 화백은 이번에 고양이 연작 40여 편을 내보인다. 우리 땅에서 고양이로 시선을 옮겼다. 그가 섬세한 필치로 살려낸 고양이들은 앙증맞고 익살맞다. 곳곳에 유머와 익살이 넘친다. 절로 웃음이 터진다. 몸무게 재는 언니의 체중계 뒤에 슬쩍 올라간 고양이, 장바구니에 들어앉은 고양이, 옥수수 먹으며 파하하하 웃는 고양이 등등, 인생의 천태만상을 보여주는 ‘냥이의 행진곡’쯤 된다.



“고양이는 표정이 없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아주 풍부하다. 호기심도 대단하다. 가까이 가면 스스로 거리를 두는 ‘차도녀’ ‘차도남’을 닮았다. 인간관계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무서운 놈, 근사한 놈, 폼내는 놈 등등, 여러 얼굴의 고양이에 한바탕 웃고 우리 자신의 오늘을 들여다봤으면 한다.”


사진 박종근 중앙일보 사진부장 park.jongkeun@joongng.co.kr




원본기사 및 출처 : 월간중앙(https://www.m-joong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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