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섭 개인전 - 한지의 물성과 가변성의 조형화 展
2019. 04. 12 - 04. 24 ㅣ Gallery Coop l 11:00 - 19:00 (연중무휴) ㅣ 02 - 6489 - 8608
탁탁탁. 찢고 던지고 두드린다.
집을 짓듯 차곡차곡 오방색을 쌓아 올리고, 알록달록한 빛깔과 글자가 서로 뒤엉켜 한지 위를 수놓는다. 전통적인 한국의 색깔에 작가만의 현대적인 감각을 더해 담백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함섭 화백. 그의 작업은 국내외를 불문하고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어떠한 힘이 그의 작품 앞에서 많은 사람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을까?
우선 작품의 바탕이 되는 한지에 주목해보자. 200년이 지나면 보존이 어려워지는 양지와 달리, 닥나무를 주원료로 만들어진 한지는 천년의 세월이 지나도 그 형태가 온전하다. 또한, 양지는 산성을 띠어 점차 황화 되지만, 중성을 띠는 한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결이 고와진다. 한지는 양지가 담을 수 없는 수많은 시간과 역사를 담는 그릇이 된다. 이처럼 한지의 물성이 우리의 소중한 역사와 얼을 아름답게 담아내고 있다. 작가는 이 그릇 위에서 작업을 시작한다. 우리의 뿌리 위에서 뚝딱뚝딱 새로운 역사를 짓는다.
탁탁탁. 한지를 찢는다. 던진다. 두드린다.
북을 치듯 재료를 두드린다. 그의 손에서 시작된 울림은 그림 안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관람객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보는 이의 정신을 깨우고,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는다. 평면 위에 수많은 능선이 만들어지며 한지는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된다. 그는 한지의 강인하면서도 부드러운 성질을 이용해 새로운 형태로 재탄생시키며 한지의 물성과 가변성을 극대화한다.
그의 몸에는 언제나 구수한 향이 배어있다. 한지가 천년의 세월을 견뎌내었듯, 그만의 노하우로 작품에 향과 보존력을 더한다. 그래서 택시를 탈 때면 기사들이 종종 묻고는 한다. “한의사이십니까?” 그 질문에 작가는 조용히 미소를 짓는다. 그의 직업은 화가. 그리고 그의 주된 작업은 작품 안에 울림과 능선, 은근한 향을 더해 생명력을 불어넣는 일이다. 그림을 살아 숨 쉬게 하고 좋은 기운을 불어넣는 일련의 과정이 어쩌면 의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해방 이후 새로운 기법과 스타일로 한지화를 세계적으로 주목시킨 작가 함섭. 그의 작업이 계속되는 한 현대미술은 결코 서양화에만 자리를 내어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의 손을 거친 한지는 새로운 현대미술의 재료이자 주제로서 그 명맥을 이어나갈 것이다.
유영주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