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오관진 이부강 조미화 차명주 4인전 '4인 4 색'
2026. 9.17 - 2026. 9.30 ㅣ 11:00 - 19:00 (토요일 휴관) ㅣ GALLERY KAF ㅣ 02 - 6489 - 8608
오관진
비움과 채움, 그 사이에 피어나는 빙열
나는 달항아리를 그린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것은 단순한 도자기의 형상이 아니다.
둥글고 넉넉한 흰 공간은 비어 있으면서도 가득 차 있다. 비움은 결핍이 아니라 새로운 채움을 위한 여백이며, 채움 또한 다시 비워지는 삶의 과정이다. 나는 그 경계에서 인간의 삶과 마음을 바라본다.
달항아리 표면의 "빙열(氷裂)"은 시간과 삶의 흔적이다. 깨지고 갈라진 균열 속에서 오히려 더 깊은 이야기가 태어난다.
나는 그 빙열을 회화의 언어로 옮긴다. 붓끝으로 이어지는 선들은 우연처럼 보이지만, 오래 바라보고 선택하며 만들어낸 나만의 질서다. 빙열은 달항아리를 넘어, 우리가 살아가며 마음에 남긴 흔적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삶의 균열이 있다. 기쁨과 슬픔, 만남과 이별, 채움과 비움이 쌓여 오늘의 나를 만든다. 그래서 나는 빙열을 상처로만 보지 않는다. 그 균열이 우리를 더 깊고 단단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달항아리의 둥근 형태와 흰 여백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나는 그 여백을 통해 삶의 본질을 이야기하고 싶다.
비우고 다시 채우는 것.
깨지고 다시 이어지는 것.
모든 흔적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
나에게 달항아리는 삶을 비추는 거울이다.
오늘도 흰 화면 위에 달항아리를 세우고 빙열을 새긴다. 그 선을 따라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고, 비어 있는 공간을 바라보며 앞으로의 시간을 생각한다.
그렇게 나의 달항아리는 비움과 채움 사이에서 존재한다.
이부강
나의 작업은 흔적으로부터 시작된다. 그것은 작가의 내밀한 개인 소사이기도 하거니와 동질의 의식을 함유하는 공동체의 서사이기도 하다.
확언할 수 없는 시공간의 흔적을 찾아 그것을 회화로 재구성한다.
그려야 할 장소들을 답사하거나 사진으로 기록한 뒤,
오래된 목재 파편들을 이용해 그 이미지를 재현한다. 여기서 표현하려는 방식은 두 가지로 첫째는 재현하고자 하는 공간과 장소로서의 풍경이고 둘째는 오랫동안 시간이 쌓여서 자연스레 여러색을 얻게된 목재 파편들의 조합이다. 이미지를 이루는 색질감으로서의 오브제들은 시간의 지층을 드러낸다.
조미화
線 : 선을 그리는 동안
늘 경계의 바깥에 서 있는 사람으로 혼자 마음 부대끼며 살아온듯 하다. 낯선 시간과 공간 속에서 방향을 잃고 같은 자리를 맴돌았던 시간들.
나는 믿지 못할 순간의 감정과 떠도는 생각들 대신 선을 긋기로 했다. 관성적으로 쉽게 쪼그라드는 마음을 다림질 잘한 흰 셔츠처럼 활짝 펴기 위해 선으로 밝음을 찾으려 했다.
주사기 바늘 끝에서 시작된 한 줄의 선은
멈추지 않고 이어지며 화면 위에 쌓인다.
그 반복은 무엇을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흩어지는 나를 붙잡아 지금 이 순간에 머물게 하는 방식이다.
선 하나에는 숨의 길이와 손의 떨림,
그리고 마음의 결이 숨김없이 그대로 남는다.
물감이 바늘을 지나 캔버스에 닿을 때 내 안에 오래 머물던 가시가 울컥 빠져 나온다.
그렇게 선은 쌓이고, 시간도 쌓인다.
어느 순간 가시의 선은 면이 되고,나는 그 안에서 또 하나의 공간을 만난다.
그곳은 특별하지 않다.
서두르지 않아도 되고,
감정을 붙잡지 않아도 되는 자리,
그저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는 고요에 가까운 곳이다.
나의 선 작업은
광막한 화면 위에 잠시 빛나고 머물다 사라지는
왜소한 흔들림의 흔적이다.
지나온 시간과 공간 사이에서 잠재된 불안과 회한은
기쁨으로, 밝음으로, 감사로 스며든다.
선이 끝나는 자리에서 또 다른 선이 이어지듯,
나는 결을 따라 가벼이 흘러가고자한다.
차명주
매일 붓을 드는 작가들에 비해 열심히 하지도 않은 나는 매너리즘에 빠져들어 캔버스를 마주하기가 힘들어진다.
최고의 그림은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지나치게 형태와 구도에 집중하다 보니 진정한 아름다움을 놓치고 살았다는 생각도 든다.
이제 변하고 싶은데 그 과정의 시작에 용기가 필요하다.
이번 작업들도 매너리즘의 연속이다.
.p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