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시사]"작가들이 작품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겠다"
경제’와 ‘미술’ 이 둘은 아무리 봐도 어울릴 것 같지가 않다. 사전적 의미로 ‘경제‘는 인간의 생활에 필요한 재화나 용역을 생산, 분배, 소비하는 모든 활동, 또는 그것을 통해 이뤄지는 사회적 관계를 말하고, ‘미술’은 공간 및 시각의 미를 표현하는 예술. 그림ㆍ조각ㆍ건축ㆍ공예ㆍ서예 따위로, 공간 예술ㆍ조형 예술 등으로 불린다.
즉, 경제와 미술은 서로 상반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다. 경제란 두말 할 것도 없이 돈을 추구하기에 지극히 물질적이다. 즉, 형이하학적으로 이해 할 수 있겠고, 미술은 작가의 감정과 심상을 표현하는 매우 순수한 작업이다. 즉, 지극히 정신적인 형이상학적으로 해석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경제와 미술은 공통의 목표가 있다고 본다. 그것은 바로 우리 인간들의 ‘삶의 질적 향상’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황의록 이사장을 면담하기에 앞서 습관처럼 인터넷을 검색하니 맨 먼저 대한상공회의소, 한국유통학회, 한국경제신문이 공동주최한 ‘자랑스러운 한국의 유통인상’을 수상했다고 나온다. 황 이사장은 아주대 명예교수로 전공이 유통으로 대기업 오너들의 개인자문을 하고 있다. 그를 처음 만난 곳은 북경 칭화대에서 정년퇴직하기 전인 2014년 코엑스의 미술전시장이었다.
첫인상은 굳게 닫은 입에, 눈썹은 진하고, 전체적으로 매우 날카로워 틈이 안보여 미술을 하는 작가로서는 솔직히 부담스러운 상대였다. 그러나 얘기를 나누다보니 경제학자인데도 전시 중인 필자의 작품은 물론, 미술계 전반에 대해 전문가 못지않은 상당한 수준의 지식을 갖고 있어 내심 놀랐다. 또한 대화 시 상대를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과 함께 처음 보는 필자를 배려하고 스카이라운지로 초대해 식사까지 대접해준 기억이 새롭다.
세간에서는 경제학자 황의록 명예교수가 한국화가협동조합을 조직하고 이사장을 맡고 있다. 그는 미술 전공도 아닌 사람이라며 의아해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필자로서는 상당한 기대를 갖고 있다. 황 이사장은 미술 전반에 대해 해박한 지식이 있어, 미술과 경제의 공통 목표인 ‘삶의 질’ 향상에 많은 공부를 한 학자이고, 한국화가협동조합 설립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다. 주목할 것은 이사장이기에 앞으로도 조합의 발전에 크게 노력하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참석한 창립총회에서 월급을 포함한 일체의 개인적 이득은 취하지 않겠다고 말해 필자와 듣는 이들을 감동시켰다.
대담할 장소를 물었을 때, 한국화가협동조합 신축 공사 중인 서울 강남 서초동에 위치한 ‘갤러리 쿱(Gallery Coop)'이 어떠냐고 했다. 공사 중이지만, 갤러리도 소개하고, 자문도 받고자 하는 황 이사장의 ‘경제’와 ‘미술’을 아우르는 혜안에 찾아가는 발걸음이 무척 가벼웠다.
국내 최초의 한국화가협동조합을 설립한 황의록 이사장을 만나 봤다.
‘화가협동조합’ 용어를 처음 듣는데, 무엇을 하는 곳인가
한국화가협동조합은 우리나라 미술시장의 안타까운 현실을 탈피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림소비의 대중화와 그림시장의 세계화를 통해 우리나라 미술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들어 보자는 취지로 작가들과 그림애호가들이 모여 만든 조그만 미술공동체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그림을 잘 아는 소수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림을 잘 모르거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사람들까지도 그림을 가까이 하고, 즐길 수 있게 함으로써 장기적인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결과적으로 그림소비를 확대해 화가들의 삶도 개선해보자는 것이다.
협동조합이란 본래 약자들이 모여 규모를 형성함으로써 강자 못지않은 경쟁력을 키우자는 의도로 만들어진 경제공동체이다. 모든 조합원들이 출자해 조합을 만들고, 주인이 되고, 이용자가 되는 것이다. 협동조합은 출자금액에 관계없이 1인1표를 행사하는 민주적경영체이기도 하다.
이사장은 경영을 전공했다고 들었는데, 이 좋은 단체를 어떻게 구상했는가
제가 예술분야 사람이 아니고, 경영학자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여담이지만 어쩌다 알게 된 화가 친구들의 삶을 들여다보게 됐는데, 너무 비참했다. 한편으로는 충격을 받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이렇게, 이렇게 하면 문제를 상당히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작가들은 가난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영학자이자 경영컨설턴트인 제 눈에 뭔가 방법이 보일 것 같았다. 그래서 가까운 화가친구들에게 이런 저런 조언을 했는데,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제가 직접 나서게 된 것이다.
질문이 좀 빗나갔는지 모르겠지만, 이토록 이사장님께서 열과 성의를 다해 단체를 만들었는데도, 월급은 물론 아무런 개인적 이득을 취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욱 경영학자인데, 의아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게 그렇게 의아한 것인가요?(웃음)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다. 보상을 받기 위해 하는 일과 좋아서 하는 일을 구분한 것이다. 보상을 받기 위해 하는 일은 확실하게 보상을 받고, 좋아서 하는 일은 얼마든지 내 시간, 내 돈을 써가면서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저는 이제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더 이상 먹고 사는 일에 어려움은 없다. 교수로 40년을 보냈으니 더 이상 명예나 권력에 대한 부러움도 없고...(웃음)
저는 어떤 일을 저울질 할 때 보통 세가지 기준을 들이댄다. ‘재미, 유익, 보람’이 그것들이다. 화가조합은 매우 재미있는 도전이다. 아무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잖습니까. 누군가를, 그것도 많은 사람들을 돕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보람 중에 아주 큰 보람이다. 단지, 유익이라는 기준이 문제인데, 유익을 경제적 가치로만 따질 수는 없다. 저도 젊은 시절을 아주 어렵게 보냈다. 정부와 주변 분들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면, 오늘의 저는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은 제 부채의식을 줄이는데 매우 도움이 된다. 자본주의 사회라고 해서 사람들이 다 돈만 생각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감동의 말씀이다. 화가협동조합의 앞으로 계획은
작가들이 작품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려한다. 단기적으로는 작가들의 전시를 지원하고, 작품을 판매하거나 임대함으로써 작가들의 생활안정을 도모하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소비자들이 그림과 친해지고, 좋아하는 그림을 쉽게 구매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도입할 것이다. 국내의 미술 수요를 개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작가들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해서 미술시장을 세계화할 것이다.
이제 화가조합이 아담한 갤러리를 만들었으니 우리 회원 작가들이 부담 없이 미술대중을 만날 수 있게 하고, 갤러리 쿱을 베이스로 여러 열린 공간들을 전시장으로 개발해서 사람들이 멀리 찾아가지 않고도 그림을 즐길 수 있게 할 것이다. 동시에 기업이나 지자체 등 관계기관과 협력해서 작가들이 예술 소외지역의 산업현장이나 교육현장을 찾아가는 전시도 지속적으로 할 계획이다.
작가들에게는 작품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필요한 지원서비스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더 좋은 작품들이 탄생하도록 영감을 불어넣는 다양한 여행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세계미술애호가들이 한국작가들의 작품을 쉽게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채널도 준비 중에 있고. 아마도 머지않아 세계인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한국작가들의 그림을 즐기는 날이 올 것이다.
듣기에 화가협동조합에서는 기판매된 작품도 2년 후라도 구매자가 싫다면 현금으로 반환해 준다는데... 언뜻 이해가 안가는데, 무슨 의미인가
아, 이해가 가지 않으신가요?(웃음) 그렇다면 바꿔 생각을 해봅시다. 온라인 상품도 소비자가 싫으면 반품을 해준다. 작품은 아시다시피 1~2만원이 아닌 고가다. 소비자가 구매를 했지만, 싫다면 고가라서 반품이 안하겠다는 논리는 시장원리에 맞지 않는다. 즉, 그만큼 우리 조합의 화가들의 작품은 자신이 있다는 얘기다. 다만, 원작의 훼손 등 제반 문제는 시장의 원리에 맞춰야 하겠지만, 처음 시도하는 제도라면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미술이 회화만 있는 것이 아니라 조각이나 공예, 사진 등 여러분야가 있는데, 화가협동조합을 만든 이유는
회화만을 우선 택한 것은 화가조합이 아직은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회화는 작가들도 많고, 조금만 도우면 성과가 날 수 있는 분야라고 판단했다. 조합이 방향도, 정체성도, 인프라도 제대로 구축하지 못한 상태에서 여러 미술 분야 작가들을 모아 놓으면 불협화음만 커질까 염려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조합의 역량이 커지는 대로 모든 영역으로 확대할 생각이다. 종합예술이 돼야 하니까.
예술인들에게 하고싶는 말씀이 있다면
예술인들은 순수하고, 고집스럽고 자기애가 강하다. 아마도 그래서 어려운 가운데서도 자신의 예술세계를 추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 점은 존경할 만한데, 동시에 시야가 좁고 멀리 보려고 하지를 않는 것 같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다소 이기적이고, 너무 쉽게 상처를 받고, 협력을 잘 못하는 특성이 있는 것 같다. 그 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작가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건강한 ‘미술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긴 안목이 필요하다. 서로 믿고 협력해야 한다.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작가들의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 동감한다. 미술의 대중화에 대해서 한말씀
제가 생각하는 미술의 대중화는 특수 계층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미술을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미술을 즐기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 만큼 미술수요가 늘어난다는 말이다. 미술수요가 늘어난다는 것은 시장이 커지고, 작가들의 시대가 온다는 말이기도 하다.
형편이 좋지 않기는 하지만, . 그렇지 않으면, 작가들의 어려운 삶을 개선할 방법이 없다는 말이 된다. 작가들이 나서서 대중들이 보다 쉽게, 보다 부담 없이 그림에 다가서게 만들어야 한다. 화가조합이 그 매개체 내지 촉진제 역할을 하겠다.
끝으로 덧붙이고자 하는 말씀이라면
미술시장이 어렵다고들 한다. 작가도 어렵고, 갤러리들도 매우 어렵다. 경기가 나빠서 수요가 위축됐다고도 한다.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저는 그것이 미술시장이 어려운 이유의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림도 상품인지라 경기에 따라 수요가 늘었다 줄었다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아무리 수원지와 수도관에 물이 가득 차 있어도 수도꼭지를 틀지 않으면, 물은 나오지 않는다. 물이 안나온다고 한탄만 할 것이 아니라, 수도꼭지를 돌리는 노력을 작가들이 스스로 해야 한다.
우리나라에 약 3만 명의 작가가 있다. 대부분이 어렵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 화가조합이 작가들을 도우면 몇 명이나 도울 수 있겠는가. 그러나 만약 화가조합이 성공한다면, 더 유능한 분들이 많이 뛰어들어 세상을 바꾸게 될 것이라 믿는다. 화가조합은 불쏘시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화가조합의 모든 아이디어나 노하우는 공유하겠다. 민과 관, 그리고 그림애호가, 작가, 갤러리가 서로 협력해서 그 시기를 하루라도 앞당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